title: "**새해 첫 썰. 추상화를 통해 도망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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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아니, 지나간 과거를 뒤돌아볼 때, 회고를 할 때, 나이를 먹어 달라지는 부분 중 하나가 개별 사건을 추상화하여 크게 묶어 처리하는 것이다. 그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반성의 경우, 반성을 위한 기준, 즉 덕 자체가 추상적 용어로 표현되므로 사건에 대한 표현 자체를 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건의 양이 많은 경우, 개개의 사건 모두에 공통된 냄새가 풍기는 경우에는 그 공통된 원인을 찾고자 추상화를 사용하는 것일 터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였기에 가능할 터이지. 어쨌건 이들 모두는 제대로 된 회고를 위해 올바르게 사용한 것이다.

헌데, 이러한 이유에서만 추상화를 사용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올바로 회고를 하려면 구체적 사건 자체를 똑바로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사건이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이라면, 바라보는 것 자체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면, 그러했던 나를 인정하기 싫다면, 그러한 상태임에도 나의 이성은 회고를 요구하는 상황인 경우, 나는 그 사건을 최대한 빨리 흟고, 잽싸게 그 사건을 추상적 용어 안에 가두어버린다. 그리고는 그 사건을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는다. 그 사건을 가두어 놓은 추상적 용어가 과연 그 사건에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는 재껴버린다.

여전히 그 사건은 내게 두려움을 주는 대상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건을 정리하였다. 도대체 뭘 정리한 거야!

그리하여 얻어낸 그 추상적 용어는 또 다른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왜 내가 그리하였지? 왜 난 그럴까, 왜 난 그런 놈인가, 왜 난 그런 놈이었을까. 그 용어가 원인을 찾는 키워드였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헛다리에 다름 아닌 용어라면 그 뒤로 얻어내는 원인 전부 역시 헛다리가 된다. 이 과정이 만약 단순 '회고'가 아닌 '반성'이 된다면, 나는 엄한 곳을, 멀쩡한 곳을 찌른 것이 된다. 결국, 이는 회복이 아닌 악화이다. 과할 때는 피투성이가 된다. 졸라 아프다. 아... 이게 바로 '자학'이였구나.

그런 삽질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당시에.

2007년 마지막 날 새벽 2시 퇴근, 오전 9시 반 재출근, 다시 오후 6시 퇴근. 겨우겨우 프로젝트를 마치고, 올해 2일 새 회사에 출근. 한 달 남짓 남겨둔 시험 일정에 8여 년에 걸친 정리에 대한 정리까지, 아주 파란만장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썅... 이런 사태를 누가 불러일으킨 거야! 누구긴 누구야, 지랄스런 바로 '나'이지.

어쨌건 2008년은 여러모로 기대되는 해. 그런 나의 기대에 충실히 걸맞은 나이길 바란다.